2014년 4월 29일 화요일

아이들의 동영상을 보고

여자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단원고 남학생의 사연에 눈물을 흘리고
가라앉는 뱃속에서 학생들이 찍은 동영상들을 보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기울어지는 배속에서 천진난만하기만 한 이들에겐
침몰이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앵무새처럼 가만히 있어달라는 반복되는 안내방송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왜 움직이지 말고 있어야 하나
패닉 상황부터 피하고 보자는 무책임한 생각?
이미 그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은 벌어지고 있었는데도...

이 동영상을 확인한 부모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엄마 아빠 사랑해"라는 장난스런 아이들의 말이
얼마나 큰 비수로 꽂혔을까.

방송국에 도착한 두 가지의 동영상에 마음이 아픈 이유는
여기에 비친 아이들
그리고 그 동영상을 찍은 아이들이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못본 애니가 산더미같은 이 아이들을
차디찬 물속으로 떠나보냈다.

죽은 아이들은 천개의 바람이 되거나 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비참하게 물 속에서 죽어갔고
여기에는 어떠한 낭만도 없다.
바닷물 만큼이나 차디찬 현실만이 있을 뿐.

선원들은 제 목숨 부지하기에 바빴고
해경들은 무서워서 선내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지금 살아 있는 어른들 중 아무도
죽어가는 학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다.

911 때 무너져가는 빌딩으로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던졌던 뉴욕의 소방관들이나
동일본 대지진 때 대피 안내방송을 위해 피신을 포기한 공무원들의 미담은
하나의 훈훈한 감동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거기에서 풍기는 '파시즘'의 향기 때문에
거부반응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인명이
어떠한 도움 없이 허망하게 희생된 상황에서
그러한 '미담'이 절실하게 그리워졌다.

누군들 자기 목숨 아깝지 않을까
누군들 죽고싶을까.

침몰하는 세월호의 창문으로 보았던
미처 탈출하지 못한 구명조끼 차림의 아이들 앞에서
알량한 제목숨 살리겠다고 줄행랑 쳤던 선원들은
앞으로 아이들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게 될까?

유가족들의 말대로
우리는 어느 누구도 동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 우리가 벌인 일이다.

그 유령선은 이명박 정부 때 느슨해진 규제로 일본에서 수입될 수 있었고
아무 문제없이 증축되어 방만하게 운행되었다.

우리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
5년 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
이 슬픈 비극은 예견되어 있었다.

용산 참사에서 가여운 목숨들이 희생되었을 때
우리 나라 정부가 얼마나 사람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지 알았어야 했다.

두 대통령을 선거로 뽑았을 때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를 포기했을 때
어이없는 뉴스들에 눈감았을 때
우리는 이미 아이들을 죽였다.

투표 용지에 도장 찍는 것은 국민의 정치적 의무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이 선출한 정부를 계속 감시하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우리는 수백명의 죽음을 통해 깨달았다.

아니, 사실 아직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현재 이 나라 정부는
유가족들 말마따나 아이들을 구하는 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보도지침이나 솔솔 뿌리면서
불똥이 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모든 잘못을 '청해진 해운'에게 돌리고 싶을 것이다.

아이들이 수십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불똥'이 튈 것을 걱정하다니
이것은 사이코패스가 하는 짓이다.

앞으로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